2024-09-01 06:11

출처: 언블록미디어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은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으로 불리며 돈을 마구 뿌리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새로운 분산형 화폐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종교개혁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가져온 것처럼, 비트코인의 탄생은 국가와 화폐의 분리라는 목표를 두었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10월 31일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백서는 비트코인 거래를 '중앙 신뢰기관' 없이 개인들 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P2P(peer-to-peer) 시스템을 제시했다. 비트코인의 생일은 그렇게 정해졌다.
비트코인의 탄생은 중앙 집중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 당시 돈의 힘에 의지하는 중앙 권력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고, 이로 인해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분산형 화폐가 등장했다. 이는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교황청에 도전하면서 시작된 흐름과 비슷하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반박문을 발표한 것처럼,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 31일 비트코인 백서를 통해 중앙 집중형 금융 시스템에 도전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정책이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급여 생활자와 연금생활자와 같은 서민은 큰 피해를 본다. 반면, 빚이 많은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다. 이러한 경제적 메커니즘은 비트코인이 가진 혁명적 요소를 부각시킨다. 비트코인은 고정된 공급량(2100만 BTC)과 예측 가능한 발행 주기를 통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비트코인의 기본인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가능하게 한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종교개혁의 창시자 마르틴 루터와 연결되는 또 다른 날짜를 선택했다. 2009년 1월 3일 사토시는 비트코인 역사상 첫 블록(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하고 50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이 블록, 즉 제네시스 블록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기초로 작동한다. 이는 1521년 1월 3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것과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루터가 교황청과의 결별을 알린 것처럼, 사토시는 제네시스 블록을 통해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사토시는 이후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호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위키리크스의 창업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지원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용하기 시작하자 홀연히 사라졌다. 사토시는 조용한 싸움을 선택했지만, 그는 비트코인을 통해 금융 혁명을 꿈꿨다. 이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신권 국가를 시민혁명으로 바꾸려 한 것과 유사하다. 비트코인은 개인 키를 통해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극대화하는 디지털 골드로 인식된다.
현재 비트코인의 가격은 5만9000달러로, 비트코인은 여전히 중요한 디지털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역사적인 메커니즘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트코인의 가치는 더욱 인정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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